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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by 정보 요정 서비스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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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8세기의 빈 고전파 핵심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이라고 불리며 음악 역사를 통틀어서 위대한 작곡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비록 35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보냈으나 오페라, 협주곡, 오페라, 소나타 등 수많은 음악을 작곡하였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애

출생 :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 대주교령 잘츠부르크
사망 : 1791년 12월 5일,  합스부르크 제국 빈 (향년 35세)
국적 : 오스트리아
활동 시기 : 1764년 ~ 1791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성함은 레오폴트 모차르트,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의 카펠마이스(음악을 총괄하는 직책, 악장 또는 지휘자)였는데 덕분에 모차르트는 태어났을 때부터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3살 때는 스스로 건반을 연주하는 법을 깨우쳤고 5살 때는 작곡 또한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아버지는 직접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연주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6살 때 아버지와 함께 뮌헨으로 떠나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작곡가와 교류하고 음악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렇게 약 3년간 (1763~1766) 이루어진 서유럽 일주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의 세계를 확장시켰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나 그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했었고 여러 오페라와 교향곡 등을 접했으며 여행 중에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인생

  이후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17살이라는 나이에 궁정음악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유분방했던 모차르트는 그의 성향과 맞지 않은 궁정과 갈등이 있었고, 권위적이었던 대주교와의 불화를 계기로 결국 1781년에 빈으로 떠나게 됩니다. 유럽에서 활동했었던 모차르트에게 잘츠부르크는 안정적일 수는 있었겠지만 너무 좁은 동네였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고 싶었던 젊은 모차르트에게는 너무 시골이었던 거죠.

 

  그렇게 빈으로 떠난 모차르트는 그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됩니다. 1782년에는 아내인 콘스탄체를 만나 가족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빈에서의 생활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으며 빈에서 최고로 유명했었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무치오 클레멘티와의 피아노 배틀에서도 승리하며 빈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을 얻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1784년에는 거장이었던 하이든을 만나 24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여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에게 모차르트에 대한 찬사를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고, 모차르트는 하이든 4중주(K. 387, K. 421, K. 428, K. 458, K. 464, K. 465)를 무려 3년 동안 작곡하여 하이든에게 차례로 헌정했습니다. 

  이렇게 당대 최고의 예술 도시라고 불리는 빈에서 수많은 피아노 협주곡과 오페라와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하여 음악에 한 획을 긋게 되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죽음

  다만 이렇게 반짝이던 그의 일생은 몸이 악화되면서 급작스럽게 막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항상 경제적으로 시달렸었던 모차르트는 돈벌이를 위해 여러 도시로 연주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원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해 크게 상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여행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1791년부터 귀족들에게 후원금을 받아 곡을 써주면서 채무를 변제할 수 있게 됩니다. 1791년에는 왕성하게 활동을 하며 훌륭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차마 몸을 돌보지 못해 건강 또한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페라인 마술피리의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난 이후 프란츠 폰 바제크 백작이 거액을 주고 의뢰했던 진혼곡의 작곡을 하던 도중 고열과 부종에 고통받다가 쓰러졌습니다. 결국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1791년 12월 5일, 35세라는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모차르트가 미완성 레퀴엠은 결국 그의 제자였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완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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